‘어느 이방인의 노래’ 중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심혈을 기울여 연작해 온 ‘어느 이방인(異邦人)의 노래’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만 47년째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아오면서 이방인으로서 겪어온 삶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민자 혹은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열악한 조건의 이민생활가운데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차곡차곡 겹겹이 쌓아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방인은 이런 이야기를 원고지에 모아 놓거나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자신이 모아놓은 이방인으로서의 삶의 기록과 궤적을 자식들 혹은 타인과 나누고 싶을 때는 CD에 담아 전달하곤 했다. 기계문명이 발달한 요즘은 CD 수십장 분량의 자료를 조그만 USB 하나에 넣어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글이나 사진으로 전달하기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백지’의 화폭을 마주하고 앉으면 이방인으로서 겪었던 수많은 ‘희로애락’의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화폭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됐다 싶으면 붓을 물감에 담아 화폭에 뿌린다. 물감이 화폭에서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생각들이 몰려온다. 이 생각들을 마른 물감위에 또 바른다. 어느 때는 지우고 싶은 기억처럼 앞서 바른 물감을 지워내기도 한다. 그리고 지우고, 덧바르며 작업하다보면 어느 덧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침잠해진다.
무엇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심정으로 스스로 마음을 비워나가다 보면 새로운 영감이 생각을 채운다. 어느 때는 이런 과정 속에서 마치 도를 깨닫고 선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수도자(修道者)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어차피 쌓고 채우려고 애를 써도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수도자와 이심전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잡념에 잠겨 있을 때 지인이 보낸 좋은 글이 도착했다. 이전에도 이 글을 읽고 공감했던 적이 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게 와 닿는 것이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에 나오는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글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며 이전 또 다른 지인에게 받았던 좋은 글이 생각났다.
작은 주머니에는 큰 것을 넣을 수가 없다.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의 물을 퍼 올릴 수가 없다. 이처럼 그릇이 작은 사람은 큰일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장자(長子)의 가르침입니다.
그릇의 크기는 바로 마음의 크기며 그릇이 작고 크다는 것은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큰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이고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 자신의 생각보다는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 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남의 눈에 잘 보이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잣대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이 또한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뒤로 물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를 위할 줄 아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저 잘난 맛에 사는 사람?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앞장서서 대중을 이끌어가려는 사람과 이끌려 가는 사람?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남들이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사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를 것이고 사람을 보는 눈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걸 뭉뚱그려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만이 있는 사람과 여러 사람이 함께 있고 자신은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남의 눈에 어찌 보이든 세상에 자기 스스로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하지만 타인의 눈으로 보듯 냉철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꾸 갖는다면 자신의 마음 크기를 잴 수 있고 자신의 그릇이 어떤지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민망하게 작은 마음을 보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복 수 있다는 건 잣든 마음을 더 넓히고 키울 수 있는 기호가 되니 자기성찰(自己省察)을 반복한다면 쉽진 않아도 작은 나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남의 눈에도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눈을 더 크게 뜨고 스스로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무엇이 최선인지 볼 줄 아는 지혜입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 지혜가 충만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제목: 어느 이방인의 노래
규격: 48″ X 48″
재료: Acrylic on canvas

<차대덕 재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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