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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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종교인들은 모두 아시는 교리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들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말 그대로 세 개의 위 즉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부는 창조주 하느님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성자 예수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인간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인간을 구원하셨고, 이 성자가 죽음과 함께 인간 현존의 모습을 떠나심으로 그의 부재에 성령이 오셔서 인간 구원의 역사는 실존적으로 계속되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교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신비로운 교리를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었고 각자의 이해와 주장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이 교리의 이해 차이는 지금도 종파에 따라 크거나 작게 차이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성경 말씀도 있듯이 사랑은 그리스도교의 제일의 덕목이며 궁극의 종착점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인간에게서는 그 자체가 사랑인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하는 존재이며 해야 하는 존재이지 그 자체가 사랑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주체가 있고 이 사랑을 받아야 하는 객체가 있어야 성립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는 사람들도 입가에 미소가 띄게 되고 행복하게 됩니다. 반대로 무인도에서 혼자 생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할 대상이 없어서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은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 분이시라는 하느님만을 생각하면 외로운 한 분이실 것 같은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사이에 오가며 넘치는 사랑을 생각해 보면 결코 외로운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위가 일체일 때 사랑의 삼위가 사랑의 일체가 되며 따라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체가 사랑이 되심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진 인간의 모습에서 거꾸로 하느님의 모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으며, 기르며, 교육하며 잘 되기를 바랍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을 부모들은 지니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자라 부모를 떠나도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들과 함께 합니다. 떠나 있는 자식들을 위해 방식은 다를지라도 모든 부모는 염려와 바램의 마음으로 기도하거나 염원합니다. 이런 부모의 모습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부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교만과 욕심으로 스스로 타락하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성부, 성자는 상상할 수 없는 극치의 고통의 십자가 위의 죽음을 성자로 하여금 맞게 하십니다. 사형선고를 눈 앞에 둔 자식을 위해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며 차라리 자신이 대신하여 죽어가는 것이 나을 거라고 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신체적으로 결별되어 있어도 계속됩니다. 그 결별이 태평양만큼이나 멀어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라고 하여도 그 사랑은 현존할 것입니다. 어렸을 적 자신을 포근하고 든든하게 감싸안던 부모님의 팔처럼 성령의 팔이 지금도 우리를 감싸안고 계십니다. 이 감싸안음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포기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강원웅, 전 휴스턴한인학교장 (wonysema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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