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칼럼]
그만 비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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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배신=지옥… 용서+화해=평화…
배신이란 무엇이고, 용서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 속에서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하는 배신이란 말은 어부성설이다.
간혹 지나친 기대감에 사로잡혀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지 못하고 남의 탓만을 하는 불평 섞인 말이 오히려 배신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의 전·근대사에 나타난 배신자들의 끝은 어떠했나. 배신은 배신을 한 사람보다 오히려 당한 자들이 많이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배신당한 사람은 그동안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을 가졌었다. 배신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빨리 치유 받지 못하면 자신이 원치 않는 가운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게 된다.
배신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눈에 비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불평이 높아지면서 본인 스스로가 남을 믿지 못하고 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높은데 이것을 상대적 빈곤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이미 중증환자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은 물론 육신마저 병들기 쉽다. 따라서 용서와 화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치유가 늦으면 늦을수록 육신의 병이 깊어질 것으로 본다.
배신한 자에 대한 깊은 원망은 어쩔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인정하라. 만약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편이 옳다고 본다.
배신의 영은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흑사병보다 무서운 질병으로 타인을 전염시키는 것과도 같다.
휴스턴 이민사회에 가끔씩 전해오는 근거 없는 루머들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결국 약물치료까지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들에 국한된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진실공방 속에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넋두리가 결코 통용되지 못함도 인식해야 한다. 끝이 없는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많은 배신을 당했다.
그래서 몇 개월간 휴스턴을 떠난 적도 있었다. 많이 울기도 했고, 상대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결국 평정심과 자기성찰의 혹독한 과정을 통해 삶을 깊이 있고 새롭게 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혼탁했던 지난 대선정국 속에서 배신이란 말을 자주 접했다. 이민사회에서도 평소 대화의 주제에 오르지도 못했던 무거운 내용들로 하여금 편 가르기를 하고, 마치 한국의 국회의원, 당 고위 간부, 정치평론가 같은 거드름을 피면서 동포사회를 분탕질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에 망연자실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남의 생각일랑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고, 배신자로 낙인찍는 풍토와 말투는 어디에서 배웠을까.
초등학교는 물론 상급학교 전 교육과정을 통해 남을 비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사는 없었다. 교과과정 어느 곳에도 그런 것은 없다. 어느 부모가 돈과 시간, 열정을 내다 버리면서 자식이 남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게 할까?
이러한 이유로 분출되는 배신은 반드시 상대방과 깊고 끈끈한 인간관계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우리네 삶과 정서 속에서 배신이란 결과적으로 나의 이익과 나의 치부를 숨기고 싶은 나머지 드러내는 일탈행위라고 볼 수 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면 먼저 머리를 숙여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배신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자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대성에 기인한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한 듯하다.
사람에게 상처주고, 없는 사실을 꾸며대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허풍을 떨어대는 것이야 말로 졸부들이나 하는 짓거리이다.
건전한 이민사회를 만드는 일은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주변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질타하고 외면하며, 헛소문을 낸다면 사회는 결코 건전한 사회가 아니라 파멸의 길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사회악이란 바로 이런 것을 지칭한다. 내가 편하기 위해 남을 불편하게 하는 아주 작은 일부터 고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정화란 쉽게 이루어 질 수 없다. 남을 아프게 하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배신당한 사람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일방적인 나팔을 불어댄다면 그것은 소음수준이다. 반드시 정죄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쪽은 힘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를 두고 약한 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끝까지 비방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곧 불타는 지옥을 체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시퍼의 영이다.
이념과 갈등을 초월한 우리네 삶의 아름다운 정서를 꽃피우기 위해 초기 이민자들은 얼마나 많은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가.
바라건대 우리 그만 욕하고, 미워하자. 우리는 고통의 순간 보다는 행복한 삶을 원하고 있다. 좀 더 노력한다면 질 높은 삶이 펼쳐질 이민사회가 성큼 눈앞에 다가오지 않겠는가.

휴스턴 이민문화연구소에서 최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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