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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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에는 의식주의 해결을 비룻하여 높은 차원의 자아실현이라는 욕구까지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여러 욕구의 모습들을 모아 자신들만의 정의를 내려 인간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정의는 인간의 사회성을 본능으로 규정하며 사회에 속하고 싶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능적 욕구이므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며 그런 욕구로부터 도망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인간 사회라는 커다란 공동체 안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수많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 크고 작은 공동체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 다시 크고 작은 수많은 공동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한인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종교집단를 들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하나의 종교집단이지만 그 안에서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조직이나 xx회 등 외부로부터 짜여지는 그룹들이 있거나, 자연 발생적으로 서로 잘 어울리는 사람들의 그룹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함으로 구성된 그룹들 중에는 인기가 있는 그룹들도 있어서 그 그룹에 꼭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며, 또 이미 그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 그룹에서 내쳐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소속감을 바라는 사회적 동물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를 바라는 모습으로 가꾸려는 욕구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정입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여 자신만의 가정을 꾸려보려는 꿈을 꿉니다. 자신의 가정에서의 구성원인 배우자나 아들, 딸들의 모습도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가꾸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는 기르는 개나 고양이도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키우길 바랍니다. 그런데 말 못하는 동물이고 바라는 모습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아예 처음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바라는 모습에 가까운 동물을 선택하여 기르기도 합니다. 가정 이외에도 크고 작은 모임이나 단체들을 만들어 자신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이런 인간의 모습은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볼 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여 하느님이 그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셨을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창조활동은 그의 모상을 닮고 창조된 인간에게서도 고스란히 나타나 규모는 작지만 인간도 하느님처럼 창조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나 봅니다. 하느님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유에서 유를 모아 하느님의 모상을 실현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교만으로 이런 하느님의 꿈이 망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망가진 꿈은 예수님을 통해 다시 실현하시려고 당신의 계획을 인간에게 알려주십니다. 에덴동산은 이미 망가졌지만 아름다웠던 태초의 에덴동산은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이 포기되지 않은 에덴동산의 모습은 하느님이 알려주신 계획을 실천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많이 힘들겠지만 천상에서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에서는 613 항목의 율법을 지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첫째 하느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둘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된다고 하느님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1등부터 몇등까지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을 뽑는 상대평가식이 아니라 누구든지 해당이 되면 뽑히는 절대평가식입니다.
뻔하지만, 사랑을 하면 아름다운 태초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느님은 알려 주십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강원웅, 전 휴스턴한인학교장 (wonysema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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