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저요? 저는 바로 내일은 안 죽어요. 혹시 그 이후면 몰라도.” 평균 수명이 계속 길어지고 있는 현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을 일일이 뉴스에서 알려 주었던 먼 과거와는 달리 큰 사고가 아니면 아예 뉴스에서도 보도하지 않아 차에 치여 죽는 사람들도 마치 별로 없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게 하는 환경에 살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원인 중에 하나인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도 삶에서 멀어 보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분들도 현대의학에 의지하여 내일을 기대하며 비슷한 생각이나 느낌으로 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을 바로 내일이 오늘이 되는 순간 그 내일은 잊혀지고 훗날이었던 모레가 바로 내일이 됩니다. 그 모레는 죽지 않을 내일이 되고 이 내일은 다시 오늘이 되어 생각 속에서 의식하지 않은 가운데 사라집니다. 이렇게 인생에서 남은 시간들은 죽지 않을 내일들의 연속이 되어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남은 시간들이 많이 남은 것처럼 막연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란 도도한 큰 강은 순간의 멈춤도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은 결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으며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은 어김 없이 착착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안심은 현재를 무심히 지나가게 합니다.
유아를 키우는 부모는 아기의 유아시절이 영원할 것 같은 생각에 유아 때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추억들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거나 놓치기도 합니다. 18세 즈음에 대학을 들어가게 되는 자녀를 둔 부모 역시 함께 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부모를 떠나 거주지를 바꾸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지붕 아래 ‘내 자식’으로 키우는 기간이 길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안심은 귀한 현재의 순간들을 쉽게 잊고 지나치게 합니다. 나이 칠십에 팔십까지 산다면 배우자의 생일을 챙겨줄 기회가 열 번밖에 없는데 영원히 살 것만 같아 귀하게 오는 생일들을 일상의 날처럼 가벼이 여기고 지내기도 합니다. 크리스찬들은 요즈음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 절기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희생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시고 보장해 주신 것을 기념하며 되새기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간을 의미있게 지낼 부활절도 평생에 몇 번 안됩니다. 태어나서 백살까지 살고 태어날 때부터 그 의미를 알고 지낸다고 하여도 백 번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60까지만 살아도 귀하게 오래 사셨다고 환갑이라는 특별한 생일을 기념했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평균 수명 80세에 사는 현대의 사람들은 좋은 시절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80세까지의 삶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훨씬 일찍 이른 나이에 죽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해마다 지내는 현재의 모든 삶의 여정 또한 다시 맞이할 보장된 순간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어떤 여자분이 자신에게 서운하게 한 남동생이 생일을 맞이하여 식구들과 함께 찾아와서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서운한 마음에, 갈 때 음식을 싸줄 수 있는 것을 거부하고 빈 손으로 배웅을 하였다고 합니다. 챙겨줄 동생의 생일이 몇 번이나 남았다고…..

강원웅, 전 휴스턴한인학교장 (wonysema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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